Thought

지난 2개월을 돌아보며

Pigment에 조인하고 느낀 2개월 동안의 생각과 느낌들

비주얼 디테일은 지금까지 은근슬쩍 넘겨왔던 부분. 프로젝트 마지막 즈음에 가면 집중력과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탓에 마무리가 늘 부족했는데, 여기서는 붙잡고 잘 마무리할 때까지 놓아주지를 않는다. 잘해지려면 프로세스 혹은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 숙달하는 수 밖에 없다. 습관처럼 자리하기까지는 꽤 지루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여기는 데이터 혹은 사용자 피드백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선호한다. 그 동안은 사용자는 잘 모르니 내가 선택하는 것이 조금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과 리서치에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과 귀찮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찬가지로 은근슬쩍 넘어갔었는데, 여기서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확실하다보니 근거가 빈약한 디자인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사용자 물고 늘어지는 수 밖에 없다.

프로세스에 적응하는 것은 오로지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해보고, 깨지고, 칭찬받고, 또 깨지면서 피드백 받고, 수정하고 나아가는 방법 말고는 답이 없지 뭐. 내 스타일이야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테니, 차분하게 버텨보자.

세일즈/마케팅/CS를 제외한 개발팀은 파리에 있는데 사실상 재택 베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런던 오피스에도 개발팀이 몇 명 있기는 한데 하나는 아예 안오고, 다른 하나는 2주에 한 번, 점심 공짜로 줄 때만 온다. 처음에는 1주일에 적어도 2-3번은 가야지 했는데, 어차피 가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데다가 모든 미팅은 줌으로 진행하다보니 집에서 하나 사무실에서 하나 그게 그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지하철 타고 점심만 먹어도 20파운드는 드는데, 굳이 갈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 회사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디자인과 UX가 중요하다는 것. 경영진, PM, 엔지니어 모두 디자이너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다보니 작은 디자인 하나조차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만,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존중하는 조직에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매니저는 실무와 매니징 모두 하다보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잘 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고, 정말 도움이 되는 피드백과 조언을 준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못하면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리드를 해본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과 싱크를 맞추기 위해 피드백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시니어에게 기대하는 것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본인이 기대하는 혹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알아서 잘 뽑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꾸준히 해볼 작정이다. 이전 조직들에서의 경험이 꽤나 도움이 된다.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것은 사실 아직은 엄두가 안난다. 누군가와 부딪히는 걸 꺼리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일단 돌아가는 걸 파악하고, 적응하는 게 우선 같아보인다. 그 사이에 내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고, 잘못된 기대치가 생겨날 수도 있겠지만, 뭐, 내가 그런걸 어떡하겠어.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랬다. 그리고 알고 있다. 내 방식대로 차근차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아준다는 것을. 조급하게 생각하지만 말자. 그래도 평가는 잘 받고 싶다. 어쩌지…

언어는 여전히 쉽지 않다.

디자인 크리틱에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2024. 11. 3.